전현규 작가의 과학 단편소설 [당신의 얼굴을 5억원에 삽니다]를 서평하다
전현규 작가의 [당신의 얼굴을 5억원에 삽니다]는 인간의 정체성, 기억, 그리고 기술과 자아의 관계를 SF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탐구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외모와 기억이 동일한 존재가 동일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며,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인간 정체성의 의미를 그려낸다.
소설의 중심 질문은 “기억이 같다면 그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기억을 공유한 동일한 외모의 휴머노이드는 기억과 외면적 요소로 인해 동일한 존재로 인식되지만, 그는 과연 인간과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간주될 수 있을까? 이는 오늘날 딥페이크 기술과 디지털 휴먼이 발전하며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중요한 윤리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신원을 확인할 때 얼굴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얼굴이 같다고 해서 동일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며, 기억과 감정의 차이는 결국 인간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소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소설은 얼굴이 하나의 상품이 되는 세상을 그리면서, 현대 사회의 소비문화와 스타 시스템도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주희서는 드론 동호회에서 만난 한설과 친자매처럼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지만, 한설이 유명해지면서 점차 자신의 삶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연예인이 된 한설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하면서 드론 동아리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자, 주희서는 한설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삶’이 ‘사회적 시선’에 의해 얼마나 쉽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짓고, 때로는 자율성을 위협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소설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탐구하고 있기도 하다.
기억을 공유하는 기술은 소설 속에서 중요한 서사 장치로 작용한다. 나나 휴머노이드는 드론 테러 사건의 피해자에게 자신의 기억을 제공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 하지만, 결국 이 기술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건의 본질을 변화시키게 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보유한 존재가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따라 사회적, 윤리적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주희서가 기억을 공유 받은 피해자였으며, 역설적으로 자신이 테러를 가하는 가해자 되었다는 반전은 기술과 인간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서사적 장치이다.
‘기억 공유’라는 개념은 오늘날 뇌-기계 인터페이스(BMI)나 뉴로(Neuro) 테크놀로지 연구에서 실제로 논의되고 있는 기술적 가능성과도 관련이 있다. 미래에는 기억을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하는 기술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경험이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인 문제이다. 이 소설은 이를 SF적 상상력을 통해 가시화하며, 독자들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또한, 소설은 단순한 철학적 질문을 넘어, 서스펜스와 반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서사를 구축한다. 나나 휴머노이드의 존재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사건의 중심에 위치한 존재라는 점이 밝혀지는 순간, 독자는 예상치 못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주희서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설정은 독자의 도덕적 판단을 흔들며, 인간의 기억과 경험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다.
이선우 형사가 주희서를 체포하는 장면에서 독자는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게 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이 남는다. 한설이 속한 걸그룹의 쇼케이스에서 이선우가 나나 휴머노이드의 정체를 의심하는 장면이 내포한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결국 전현규 작가는 소설에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서사의 결론을 선택하였다. © sfpre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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