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리 작가의 과학 단편소설 [내 서랍 속의 여자] ③


장난스런 미소를 얼굴에 띤 채 영수가 베란다로 달려 나왔다. 창고 문 앞을 수문장처럼 막고 선 나와 영수의 유치한 대치가 이어졌다. 나는 그의 허리를 껴안아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무게추처럼 매달렸고 그 모습을 본 영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금세 배가 고파져 우리는 그 어린애 같은 장난이 시작된 창고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저녁 식사를 했다. 오늘 찾았던 낡은 서랍장도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당분간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금요일, 나는 근무지인 기억 백업 데이터 센터에서 항상 먹던 샌드위를 점심으로 먹고 있었다. 부지 크기만 6만 7,130m²에 달하는 이곳에 대한민국 인구 1/3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과거에야 너도나도 신기해하며 보관된 기억 재생을 해보곤 했지만 이미 그런 시기는 지났다. 내 주변만 봐도 백업 기억을 찾는 사람들은 가까운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차용 증명을 보내기 전 백업 기억을 뒤져보는 몇몇 정도였다.

외국에는 관련 사업이 꽤 있어 한국보다 사정이 낫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는 법이 개정되며 기억 열람에서부터 반출까지 과정이 초기보다 훨씬 까다로워진 데다 초상권 문제도 회색 지대로 남아서 관련 산업이 거의 죽어버렸다. 재미있는 건 설문 조사 결과 고작 사람들이 5.6%만이 백업 기억을 실제로 재생해 본 적 있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머지는 자신이 그 5.6%일 희박한 가능성을 놓지 못해 후두부를 째서 칩을 심은 셈이다. 그런 나도 마찬가지고.

내가 샌드위치를 다 먹고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유일한 동료 주영이 출근했다. 추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햄버거를 입 안에 쑤셔 넣으며 도착한 그녀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로 ‘별일 없었죠?’라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선 별일이 생기는 게 별일이었으니까.

센터의 기술적 문제는 모두 설비 사이를 오고 가는 로봇이 해결한다. 사람이 하는 거라곤 문제가 생겼을 때 인공지능이 작성한 보고서를 마치 자기가 작성한 것처럼 속여 도장을 찍는 일뿐이었다. 회사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기억은 아직도 사적으로 여겨지는 느낌이라 사람의 이름값을 빌려 쓰는 게 흥보상 효과적이라고 했다.

이 글은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대한민국 과학 소재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품집 2023’에 실린 배우리 작가의 [내 서랍 속의 여자]를 참고하였습니다. 복제와 무단 전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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