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환 작가의 과학 단편소설 [가인과 아별] ②
그런 사정으로 양형조사관 창헌은 눈앞의 유약해 보이는 청년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그는 이곳까지 오는 길을 떠올렸다. 늦은 오후, 법원에 있는 창헌의 사무실에서 출발해서 지금 이 저택의 실소유주, 김 박사의 아들인 가인을 만나러 오는 게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서울 한복판에 이 정도 부지를 소유하고 있다니. 육중한 대문을 지나 숲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규모의 정원을 지나자 온갖 사람들이 에워싼 저택이 보였다. 요즈음엔 어디를 가도 보이는 앵무새들이었다. 다만 규모나 목소리는 창헌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몇 명이나 모였을까. 백 명, 천 명?
불분명한 목소리로 각자의 구호를 외쳐대던 그들은 창헌이 정문으로 들어서자 호기심 섞인 시선들을 던졌다. 재빨리 어디론가 전화를 걸거나 기록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때였다. 금방 창헌의 인적 사항은 언론사나 인터넷 개인 방송에 뿌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전 세계 도박 사이트들의 승률을 몇 퍼센트씩 널뛰게 할 것이다.
침묵이 이어지자 입을 먼저 연 것은 뜻밖에도 가인이었다. 지치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의외였다. 190cm에 100kg이 넘는 창헌이 말없이 앉아 있으면 상대방은 대개 주눅 들고 눈을 피하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창헌은 그 이유가 자포자기나 분노일 거라고 짐작했다. 같은 이야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던 사람의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이 가인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조사관님은 그래서 어느 쪽인가요. 파괴? 살인?”
창헌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뗐다. 주변을 둘러봐도 재떨이가 보이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대고 털었다. 최고급 바닥재에 담뱃재가 뿌려졌다. 가인은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대신 동그랗고 납작한 로봇청소기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담뱃재를 빨아들였다. 새처럼 생긴 드론이 소리 없는 활공으로 날아와 탈취제를 뿌렸다. 크고 작은 로봇들의 구동음이 그들이 있는 응접실의 유일한 소음이었다. 사물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창헌은 대답하지 않고 가져온 나무 케이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안에 든 물건을 본 가인이 놀았다가, 이내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보다 철저하시군요. 사이드 채널 공격을 대비한 건가요?”
“뭐가?”
“그것 말입니다.”
이 글은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대한민국 과학소재 스토리공모전 수상작품집 2023’에 실린 이진환 작가의 [가인과 아별]을 참고하였습니다. 복제와 무단 전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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