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궁 작가의 과학 단편소설 [판타스틱 리조트 작동 매뉴얼 서문] ②
톨킨은 커피가 입맛에 안 맞느냐고 정중하게 물었다. 그 질문은 모두를 향해 있지만 실제로는 나를 위한 것. 나는 감각 조정 코디네이터답게 계산 결과를 알려준다.
“산미를 높여주세요, 3%만.”
톨킨이 손을 휘저었다. 잔 속에 커피가 차오르고 그 위로 뽀얀 김이 너울거렸다. 모두 잔을 들어 호호 불고 첫 모금을 마셨다. 음, 하며 내뿜는 콧김에 과일을 닮은 커피 향이 섞여 있다. 불평을 늘어놓던 민규도, 민규의 말에 타박을 놓던 우진도, 뒤늦게 논쟁에 참가한 P와 논쟁에 관심이 없던 혜나도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뭐가 바뀐 건지 난 모른다. P가 ‘아주 약간’이라 할 때는 3%를 의미하는 거라 그리 알려줬을 뿐. 난 커피를 그저 각성제로 여겨온 사람이다. 에티오피아산 원두가 진짜 이런 향이었는지는 나에게 물으면 안 된다.
모든 게 그렇다. 아까 먹은 김치찌개가 원래 그렇게 매콤했는지, 원래 그렇게 빨갰는지. 원래, 원래, 원래, 그놈의 원래. 일종의 기억상실증? 혹은 치매? 내 의식 회로가 좀먹고 있는 건가. 혹은 그저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고민하는 나에게 혜나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한 거라고 일침을 날린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다, 내가 살아 있는 건지, 나도 이 커피처럼 허깨비가 아닌지.”
혜나는 늘 하던 소리로 면박을 준다.
“데카르트가 그랬다잖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은 같은 개념이 아니라고 내가 따지자 혜나는 흥얼거렸다.
“작년에 왔던 공대생, 잊지도 않고 또 왔네.”
혜나의 말대로 나는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내가 나인가 하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애초에 데카르트가 저 말을 한 것도 ‘의심’에서 출발한 것이다. 생각하기 전에 그는 의심부터 했다. 모든 걸 의심했다. 지금의 나처럼.
지구의 심해에서 문드러져 흔적조차 찾지 못할 내 몸을 나는 매일 의식하고 있다. 내 몸, 내 과거의 유물, 내 현재의 근원. 나는 괜스레 손가락을 움직여 커피잔을 고쳐 쥐어 본다. 매끌매끌하고 단단한 자기의 질감. 그것만이 유일하게 매달릴 수 있는 진실이라는 듯이 나는 더욱 힘주어 잡았다.
“청승맞기는.”
혜나가 내 어깨를 꾹꾹 주무른다.
“영서야, 느껴져? 중요한 건 지금, 여기야. 혼자 멀리 가지 마라.”
혜나는 오늘도 레이디버그로 변신했다. 카페를 나서면 블랙 캣 우진과 함께, 에펠탑을 무너뜨리려는 악당을 물리치러 간다. 나는 캣니스 에버딘. 스노우 대통령을 잡으러 판엠의 캐피톨로 날아갈 거다.
내가 여기 와서 푹 빠진 소설이 있다. 제목은 바로 『헝거 게임』. 어느 디스토피아의 멸망의 배후에는 또 다른 디스토피아가 있었다. 우리는 멸망을 피해 이곳에 왔지만 그것은 또 다른 멸망을 부른다. 그 소름 돋도록 멋진 유사성.
커피는 여전히 향을 내뿜었다. 그 향이 허상일지라도 환전한 무(無)보다는 낫겠지. 한 모금씩 음미하자. 마지막 방울까지.
이 글은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대한민국 과학소재 스토리공모전 수상작품집 2023’에 실린 오동궁 작가의 「판타스틱 리조트 작동 매뉴얼 서문」을 참고하였습니다. 복제와 무단 전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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