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정 작가의 과학 단편소설 [천왕성에 다이아몬드 비가 내리면 너를 만나러 갈게] ①


암흑 속 남보랏빛 소용돌이가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 그 안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잠잠해지는 자연의 소용돌이와는 달랐다. 그것은 어디에선가 새로운 동력을 얻어 주기적으로 갱신됐다. 흩어져 사라지는가 하면 다시 휘몰아쳐 모였다. 그 움직임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마치 모니터 앞의 나를 감시하는 악마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눈을 감았다 떠도 여전히 /imagine 뒤의 해독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프롬프트(명령어)들이 까만 모니터 바탕을 배경으로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소용돌이쳤다. 서버 위 프롬프트들의 실행이 곧 이미지의 생성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명령어의 조합만큼 다양한 이미지들이 그리드 위에서 태어났다. 천지창조의 무한증식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의 새로움에는 어떤 낯익은 기시감이 있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었다.

소용돌이의 관문을 통과해 AI 이미지 생성툴의 채팅방으로 입장한다. 이 채팅방에서 사람들은 대화하지 않았다. 이곳은 유저들 각자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요구를 관철하는 공간에 더 가까웠다. 우리는 함께 있지만 홀로 각자의 작업을 수행한다. 나는 가끔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누군가가 저 높은 곳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한다. 이 광경을 보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ALT 키와 동시에 TAB을 눌러 다른 창으로 이동하여 대기하고 있던 ChatGPT에게 역할을 부여한다.

“너는 지금부터 아티스트야.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진부함을 전복시키고 대범하면서도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어 봐. 현실에 기반을 두지만 그걸 뛰어넘는 거야. 장소는 얼음 행성이야. 가장 중요한 것을 지구에 놓고 온 여자가 비를 맞고 있어. 누구나 귀 기울일 만한 근사한 이야기를 만들어 줘.”

대부분이 간과하지만, 사람이 아닌 그것에 인격을 부여하는 행위는 요식이라도 가장 효율적인 절차다. 숨을 쉬게 하려면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채 60초가 되지 않아 ChatGPT가 텍스트를 다급하게 토해내기 시작한다. 하나의 글감과 그것을 둘러싼 분위기만 던져주면 나머지 이야기는 ChatGPT가 척척 알아내어 완성한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많은 이들에 의해 소비된 연인 사이의 사랑과 작별에 관한 이야기들이 모이고 섞여 뭉뚱그려진다.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이 정도면 무난하다.

보편과 평균들이 합쳐져 사람들에게 짙은 소구력을 지닌다. 거기에서 비현실적, 여성, 뒷모습, 천왕성, 다이아몬드 비 같은 단어들을 복사해서 채팅창에 다다닥 붙인다. 이건, 마치 자문자답 같다. 나는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인공지능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온다.

이 글은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대한민국 과학 소재 스토리 공모전 우수상 작품’인 여하정 작가의 [천왕성에 다이아몬드 비가 내리면 너를 만나러 갈게]를 참고하였습니다. 복제와 무단 전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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