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정 작가의 과학 단편소설 [천왕성에 다이아몬드 비가 내리면 너를 만나러 갈게] ②
그 익숙한 단어들에서 불현듯 놓친 것이 떠올랐다. 다시 /imagine 처음으로 돌아가 아티스트 엘리시아를 입력한다. AI는 단순해서 여전히 순서에 집착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망설이지 말고 가장 먼저 말해야 한다. 아티스트의 이름을 이야기하면 인공지능은 그 아티스트의 작품 이미지들을 취합해서 그것을 기조로 작품을 생성한다.
처음에 이목을 끄는 것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사람들은 한번 주목하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에는 의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충성한다. 사랑하기로, 열광하기로 한 것을 포기하는 일에는 결단이 필요하고, 그 대가는 비싸다. 나는 그 틈을 조심스럽게 파고든다.
봇이 내가 입력한 텍스트들을 토큰으로 잘게 쪼개어 분석한 후 엘리시아가 그간 세상에 공개한 작품들을 분주하게 긁어모은다. 그 생성자 중에 진짜를 가려내기 위한 판별자들의 시간. 아니다. 가장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의 행렬을 만들기 위해 선별하는 그 잠깐의 시간. 아이폰의 사파리로 들어가 엘리시아를 검색한다.
어제 이후 인스타의 팔로워 유입 증감을 확인한다. 엘리시아의 작품에 대한 가치를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댓글 및 DM을 바로 삭제한다. 인터넷 포털 상위 검색어 목록에 엘리시아가 여전히 있는지도 확인한다. 폭발적인 반응 같은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인 기사는 없다. 엘리시아는 더는 뉴비가 아니니까. 이 정도면 흡족하다.
이 고유명사는 작품의 누적과 시간의 숙성으로 보통명사처럼 회자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양질의 작품을 가끔 생성하는 것보다 평균적인 수준의 작품을 자주 많이 생성해 내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면 망각이다. 망각은 모처럼 어렵게 잡은 기회를 망가뜨린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품은 예술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열광하면 그게 예술이다. 잊히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지 않는 것. 그건 결국 죽음이니까.
바깥에 납작 엎드려 있던 남청색의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들어 온다. 어둠은 대낮에는 또렷했던 모든 사물의 명확한 경계를 지워버린다. 잊고 있었던 것들이 슬며시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는 시간이다. 애써 지워버렸던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 종일 거실 통창을 가리고 있는 노방커튼을 걷어 젖히자 어둠과 함께 도착한 것들이 일순 드러난다.
이 글은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대한민국 과학 소재 스토리 공모전 우수상 작품’인 여하정 작가의 [천왕성에 다이아몬드 비가 내리면 너를 만나러 갈게]를 참고하였습니다. 복제와 무단 전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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