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궁 작가의 과학 단편소설 [판타스틱 리조트 작동 매뉴얼 서문] ①
우리는 오늘도 다툰다.
의식이 깜빡거려도, 전력 공급이 시원찮아도, 할 일이라곤 이것뿐이다. 열심히 일궈봤자 소스코드의 조합에 불과한 당근과 시금치, 밤새워 그린 그림,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연습한 피아노곡, 모두가 데이터고 허상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 몰두한, 향유해 온 것들. 우리가 앉아 있는 카페 실마릴리온과 눈앞에 놓인 한 잔의 커피처럼.
민규와 우진이 커피 향을 놓고 옥신각신했다. 민규는 이게 진정한 에티오피아산 원두라면 좀 더 감귤향이 나야 한다 했고, 우진은 차라리 오렌지주스를 마시라고 빈정거렸다. P가 민규를 거들고 나섰다. 산미가 아주 약간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생전 혹은 과거, 유명 자산가의 상속녀였던 P. 판타스틱 리조트에 가장 늦게 입성했으니 그의 기억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게 몇 백 년 전인지 몇 천 년 전인지는 잊어버렸다지만.
P는 미용실, 의류매장, 구두매장을 빠짐없이 들렀다 온 모습이었다. 품에는 하얀 털이 소복한 강아지까지. 패션에 대한 열망이 식으려면 훨씬 오랜 세월이 필요한 모양이다. 저런 식으로 품위를 유지하려면 메모리며 전력이 얼마나 소모될까? P는 손톱만큼이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는 P의 손톱은 핫핑크였다. 네일숍에도 들렀다 왔느냐는 내 면박에 우진과 혜나가 고시랑거렸다.
“야야, 내버려 뒤, 어차피 망할 세상.”
“그래, 몇 조 더 빨리 망한다고 큰일 나겠어.”
친구들의 무신경한 말들이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덕분에 내 머릿속은 빛바랜 사진을 들여다보듯 아득해진다.
바리스타 톨킨이 다가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백인 신사의 모습으로. 문득 의문이 든다. 톨킨이란 누가 붙인 이름이었지? T-5731이라는 문자열은 왜 그를 볼 때마다 떠오를까? 그가 판타스틱 리조트를 관리하는 중앙 인공지능이 부리는 수많은 말단 인공지능 중 하나라는 사실 말고는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나는 답을 찾지 못해 초조한 마음에 잔을 내려놓았다.
이 글은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대한민국 과학소재 스토리공모전 수상작품집 2023’에 실린 오동궁 작가의 [판타스틱 리조트 작동매뉴얼 서문]을 참고하였습니다. 복제와 무단 전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산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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